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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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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2
    최고관리자 "판단이 아닌 순종"
    하루를 여는 말씀 히브리서 11:17"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계시가 왔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오직 순종하였습니다.물론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귀한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두가지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정말 하나님의 명령일까? 약속의 아들을 주신분이 다시 그것을 달라고 하시니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하는 고민을 했을 것같고...귀한 아들을 정말 드려야 하는가? 내가 그 아들을 드리고 살 수있을까?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깊은 고민에 빠져서 당황스러운 상황에 얽메이지 않고,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했을 것입니다.하나님에 대한 깊은 묵상은 나의 상황이 먼저가 아니고 하나님이 뜻이 먼저임을 깨닫게 하고,그 깨달은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어제, 오늘 우리 앞에 놓은 상황들은 이해하기 힘든 문제들이 많습니다.아브라함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우리들의 상황...그 상황앞에서 아브라함의 선택이 순종이었듯이 나의 선택도 순종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방법은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이해할 때 상황을 넘어가는 은혜를 받습니다. 참된 믿음은 언제나 순종으로 나타나고, 올바른 순종은 은혜로 돌아옵니다. 오늘 일어나는 모든 상황, 모든 문제가운데 판단하려고 하지말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지를 찾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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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1
    최고관리자 "주바라기"
    하루를 여는 말씀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부흥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부흥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살 때 언제나 주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작은 죄에서라도 멀리하게 됩니다.   모든 생물에는 그 안에 열을 품고 있습니다. 그 열이 살아지게 되면 죽거나 얼어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하나님을 품고 살 때 내 안에 악은 사라지게 되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서 멀어지게 되면 악은 서서히 드러납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사는 것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슬픔, 낙심, 고난의 마음이 들 때 주님을 바라보면 평안함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어, 그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갖게됩니다.   오늘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주바라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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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0
    최고관리자 "염두"
    하루를 여는 말씀 고린도후서 12: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세번씩이나 하지만 병이 고쳐진것이아니라 "너에게 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와 성령충만을 혼동합니다. 은혜를 매일 간구하는데 사실 우리에게 은혜는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으로 충분합니다. 성령충만은 매일 매 순간 간구해야합니다. 은혜받은자가 그 은혜를 깨달으면서 은혜로 살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한데, 그 인도하심에 기쁨으로 순종할수 있는 것 성령충만입니다. 흔히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헌신과 봉사를 할수 있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그 은혜로 충분한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또한 성령의 위로하심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으로 깨달은 것을 실천하며 살때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가운데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충분한 은혜를 받았음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그 은혜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최선의 삶가운데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고, 함께하심이 있는데.... 그것이 복입니다. 자녀된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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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9
    최고관리자 "신념과 믿음"
    하루를 여는 말씀 요한복음 14:21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흔히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이 믿음과 신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념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념은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신념보다 큰 상황 앞에서면 무너지게됩니다. 믿음은 상황앞에서 더 전진하게하는 힘을 갖게하며, 상황과 상관없이 삶의 전반에서 나타납니다. 신념은 자기의 경험과 지식, 배경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자신의 생각이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념은 내가 만들어가지만,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세워가는것입니다. 신념은 자기 생각이라면, 믿음은 하나님의 마음이 근거가 됩니다. 나의 믿음이 신념이 아닌 성경의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세겨져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사랑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는것으로 증명이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없고, 그 말씀에 절대적 순종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신념입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지만, 신념은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오늘 나의 믿음을 돌이켜 봅시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지... 그 말씀을 사랑하는지, 그 말씀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그리고 온 정성을 다해 지키고있는지... 말씀으로 사랑을 고백하신 하나님께, 나의 삶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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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8
    최고관리자 "하나님 나라"
    하루를 여는 말씀 마태복음 6: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우리는 진정한 세상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적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영광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경험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삶에 만족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의 의가 되기보다는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려 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만을 원하고, 내 안에 계신 주의 영광을 이 땅에 풀어내기보다는 하늘에 계신 주께 내것을 구하기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그분을 높이고 그분의 권능을 이 땅에 풀어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신 소명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그분의 능력과 기사와 표적으로 그분의 통치를 나타내며, 은혜안에서의 자유함을 누리고, 이 땅을 묶고 있는 어둠의 권세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적 믿음과, 절대적 순종에서 시작합니다. 그 나라를 이루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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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7
    최고관리자 "사명"
    하루를 여는 말씀 창세기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철학가이자 수필가로 한국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치셨던 고 안병욱 교수님은 사람에게는 육적인 탄생, 영적인 탄생, 그리고 사명의 탄생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육적인 탄생을 통해 기본적인 생명을 누리지만 여기에서 머문다면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을 때 거듭남, 즉 영적인 탄생이 이루어지며 영적 새 생명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영적 새 생명으로 태어나 영적 풍성함을 누리는 것이 큰 은혜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거기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모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탄생은 사명의 탄생입니다. 인간은 그저 우연히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존재의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 시에 부여된 사명을 따라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갈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명을 잃어버린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것이 최선인줄 아는 어리석은 사람들... 영적 단계는 신앙의 기초의 단계인데 그것이 최고의 단계라 착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돌아봅니다. 사람에게 가장 행복한 날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자기 인생의 사명을 깨닫게 된 날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꿈을 꾸는 날인 것입니다. 어제 사명자로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사명을 깨닫지 못했다면 오늘의 삶도 그저 조금 편안한것에 만족하는 저급한 신앙의 수준에 머물러 세상의 흐름에 끌려다니는 바쁘기만한 인생이 될것입니다. 사명을 받은 나... 사명이 있는 나... 그 사명이 있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게되고, 감사하게되고, 하루하루가 의미있는 삶이 될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요 진정한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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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6
    최고관리자 "이끌림"
    하루를 여는 말씀 에베소서 5:18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방탕이 따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단지 그들 안에 거하시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성령님이 그들을 지배하셔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내 기분에 따라 충만했다, 안했다 하는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나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감정이 성령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술 기운이 사람을 이끕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말이 없어지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노래하시도 합니다. 내 기분이 술 기운에 이끌린것입니다. 성령충만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할때 비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매일 매순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뜻은 매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어야 한다는것입니다. 내 자존심...내 생각을 버릴때 성령의 충만은 시작합니다. 내가 자아가 살아나는 만큼 성령의 충만은 적어지게 됩니다. 성령충만은 나의 자아를 버리려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할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매 순간 하나님께 집중해야합시다. 어떤 상황, 어떤 사람과 있더러도 하나님께 집중하면 그 삶이 성령충만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통해 진정한 영적 자유함을 누리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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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5
    최고관리자 "주님의 눈빛"
    하루를 여는 말씀 누가복음 22:61-62"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큰 실수를 했습니다.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보기 좋게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한 번은 실수로 잘못 할 수 있습니다. 두 번 정도야 너그럽게 용서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이나 실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번 잘못하는 것은 ‘실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의도적인 베드로의 죄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버린 죄와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좌절한 베드로가 가룟유다와 다른 점은 다시금 회복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회개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누가는 주님께서 고개를 돌려 베드로를 보신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예언하신 닭의 울음소리가 울릴 때 베드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그 때 그의 심정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자신의 비겁함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빛에서는 한점도 미움이나, 화가 담겨있지 않았을것입니다. 그저 연약한 믿음을 가진 제자를 향한 사랑의 눈빛이었습니다. 그 눈빛을 바라본 베드로가 흘린 눈물에는 후회, 안타까움, 회개, 새로운 결심과 헌신의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주님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고통과 좌절의 순간에 주님의 눈빛을 바라본 베드로는 돌이켜 대제자로서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의 눈빛을 보지 못한 가룟유다는 비참한 인생의 끝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자연과 환경을 통해서 나 혼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의 눈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오늘 나의 삶을 이끌어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게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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